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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이해/하루의 노래 나의 작업실 이야기

by 서울나기 2020. 10.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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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막 프리랜서를 시작했을 땐 수중엔 돈은 없었고, 작업실도 마땅치 않아 여기저기 떠돌았다. 2~3명이서 작은 공간을 빌려서 쓰기도 하고, 아는 형의 사무실에서 작업하기도 했다. 일이 막 들어오던 시기여서 작업실이 참 간절했던 시기였던 것 같다.

 

아마도 프리랜서를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런 환경에서 시작할 것이다. 세상은 넓지만 단 한 평도 나에게 내어줄 공간은 없다는 기분을 느끼면서 말이다. 어떤 환경에서 그동안 작업 해왔는지 이번에 정리해 보고자 한다. 이런 기록도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될지 모르는 일이기에.

2014년 신설동 작업실

내가 하는 작업은 모션 그래픽과 3D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일이었다. 일은 늘 많은 시간과 노력을 요구했는데 그야말로 눈을 뜨면 출근이고, 눈을 감으면 퇴근인 상황이었다.

여러 사무실을 전전하다가 친구와 함께 신설동의 작은 사무실 하나를 빌렸다. 월세와 공과금을 친구와 절반씩 내고 있었지만, 언제나 내가 더 많이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정리하는 것이 맞겠다고 생각했다.

2015년 망우동 작업실

당시엔 집에서도 독립한 상태여서 작업도 하고, 일상을 살아갈 공간도 필요했다. 저렴한 월세 집을 찾아 서울 전체를 다 뒤져봤지만 가난한 프리랜서였던 나의 상황에 맞는 곳을 찾기란 힘들었다. 흘러 흘러 망우동에 위치한 이 집을 발견했다. 반지하였지만 넓은 투룸, 싼 월세, 당장 작업해야 할 일이 있었기에 급한 대로 계약할 수밖에 없었다.

 

살다 보니 여러가지 문제에 봉착하게 되었는데 일단 반지하다 보니 습기가 많아 제습기를 하루 종일 틀어 놔야만 했다. 또 벌레도 많았는데 이 집에 나타나는 벌레는 내 지난날의 경험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새벽에 문득 이상한 기분이 들어 불을 켜보니 커다란 돈 벌래 한 마리가 초속 2m의 속도로 대각선을 가로질러 지나가고 있었다.

돈 벌래는 나름 익충이다. 인간에게 해를 입히지는 않지만 몸에 붙은 그 무수한 다리는 내가 견딜 수 있는 한계를 남어서는 것이다. 그런 녀석이 냉장고 뒤로 사라지는 날이면 그날은 뜬 눈으로 밤을 지세워야 했다. 물론 덕분에 개미와 바퀴가 없었다는 장점은 있었다.

 

반지하에서 1년 정도 지내며 돈을 모아 보다 나은 집으로 이사 했는데 이번에는 2층 집을 알아보았다. 

2017년 방학동 작업실

여긴 이전 집보다는 작았지만 2.5층이었고, 막혀있는 건물이 없어서 햇빛이 잘 들어왔다. 환경이 나아져서 이때부터 반려묘와 함께 살기 시작했다.

 

이 작업실의 가장 큰 문제점은 곧바로 나타났는데, 이사온 첫날 나에게 환한 웃음으로 인사를 건냈던 이웃집 사람들의 자비없는 소음이었다. 집 안에 웬수라도 들어 앉은 양 그 가족들은 매일 같이 싸웠다. 시끄러운건 비단 이웃집 뿐 아니었다. 건물 사람들은 누가 현관문을 가장 쎄게 닫는지 내기라도 하는 것 처럼 너나 할 것 없이 최선을 다해 닫아대는 바람에 그때마다 나는 깜짝깜짝 놀라곤 했다.

방음 공사를 해서 문 닫는 소리는 많이 줄었지만 벽간 소음은 한 20% 정도 줄어들었을까? 소용이 없었다. 문 닫는 소리나 층간 소음은 그래도 다른 집에서 내는 소리로 느껴지지만, 이웃집에서 들려오는 벽간 소음은 옆 방에서 내는 소리 같아 미쳐버릴 것 같은 게 포인트다.

 

어쨌거나 소음은 1년여 동안 내게 큰 고통을 줬는데, 다시금 이사를 결심하게 라는 계기가 되었다. 네이버 카페에 글을 올려 세입자를 찾았는데, 왜 인지는 모르겠지만 드라마 PD가 촬영을 하고 싶다며 로케이션을 왔다. 그 사이 세입자를 구해 나는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갔고, 드라마를 촬영했는지는 모르겠다.

2018년 방학동 작업실 2

그리하여 이사온 곳은 이전에 살던 곳과 200m 밖에 차이 나지 않는 곳이었다. 마음이 급한 것도 있었다. 소음에서 탈출했다는 것 하나만으로 만족했기 때문에 건물에 막혀 태양광이 적었다는 단점은 무시할 수 있었지만, 이 곳에서 사는 동안 고양이들은 무척 답답했을 것이다.

 

이 집에서는 주인아저씨의 부탁으로 6개월 더 연장해 2년 6개월 정도 살았다.


지금 사는 곳은 올해 4월에 이사를 했다. 이번에야 말로 좋은 집에서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반지하의 습함과 벌래, 벽간 소음, 막힌 풍경과 같은 단점이 없는 집 말이다. 그래서 나름 기준을 잡고 집을 찾기 시작했다.

1. 이층 이상일 것.
2. 투룸 이상일 것.
3. 햇볕이 잘 들어오고 풍경이 좋을 것.
4. 주변이 조용할 것.
5. 내 예산 상황에 맞는 집일 것.

사실상 이런 집을 '서울'에서 찾으려면 도봉구나 중랑구, 남쪽으론 관악구가 아니면 찾기도 힘들뿐더러, 찾는다 해도 이런 기준이라면 무지막지하게 비싼 곳이다. 그래서 이사 갈 시즌이 오면 깊은 절망감에 빠지곤 한다. 아마 대부분 그럴 것이다. 집주인 아저씨와 방을 빼기로 약속한 날 하루 전까지도 나는 만족할 만한 집을 찾을 수 없었는데, 길거리에 나앉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거의 자포자기한 심정이 었다.

 

그러다 막판에 지금 사는 이 집을 발견했다. 예산에도 맞았을 뿐 아니라 테라스가 있는 4층 빌라로 사방으로 뚫려 있어 햇볕도 잘 들었다. 내가 생각한 모든 조건을 충족하는 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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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라스가 있는 2룸의 깔끔한 집이다.

이사 하루전에 집주인과 계약하고, 다음날 바로 이삿짐 센터를 불러 오후에 이사를 했다. 정신없이 이사를 하고 아직 도시가스가 들어오지 않은 차가운 바닥에 누워 나도 모르게 잠들었던 기억이 난다.

 

여기에 온지도 벌써 반년이 지났다. 주변도 무척 조용하고, 햇빛도 잘 들어오고, 고양이들도 좋아하는 것 같다. 무엇보다 테라스가 있어 빨래를 말리거나, 고기를 구워 먹을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굳이 단점을 찾자면 엘리베이터가 없다는 것..

2020년 창동 작업실

어쨌든 이렇게 나의 5번째 작업실이 차려졌다. 이사 다니는 건 매번 힘든 일이다. 여러 어려움은 있었지만 반지하로 부터 여기까지 그래도 어떻게든 점점 나아지고 있다는 게 중요한 것 같다. 고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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